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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야 이 바부야

도서 '기획은 2 형식이다' 리뷰

저자 : 남충식


* 글을 쓴 당시 3월, 나는 한 달간 여수 할머니 댁에 있었다. 

 

난 할 일 목록에 '쿠쿠 입양처 알아보기'를 적었다.

쿠쿠는 할머니 집에 있는 강아지다. 검은색 강아지고 최근에 새끼 일곱을 낳았다. 아빠는 누군지 알 수 없다.

할머니는 불평했다. 암놈을 키워서 이 고생을 한다고.
(할머니는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은 손주가 암놈 덕에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잘 모른다)

 

할머니의 불평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쿠쿠가 낳은 새끼들은 드센 아이들이었다. 현관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면 새끼들은 내게 우르르 뛰어들어 내 종아리를 물고 할퀴었다. 새끼들의 이갈이쯤은 아프지 않았다. 다만 한 발을 디딜 때마다 내 발에 새끼들 몸이 차여 불안했다. 처음에는 새끼 강아지가 내 발걸음에 치여 아플까 한 발 한 발 조심히 걸었다. 이내 불안 속에 불편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나는 곧 맘 편히 걸을 수 없어 새끼들에게 "떽! 오지 마!"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은 새끼 강아지들이 내 제스처에 겁을 먹을 리 없었다. 요놈들은 계속 달려들었다. 할머니의 불편은 내 불편보다 컸을 테다. 늙은 몸 자체가 걸음을 불편하게 할 텐데 새끼들의 달려듬으로 생기는 불편이 당연 나보다 컸을 것이다.

할머니는 말했다.
"이제 암놈은 안 키울란다. 새끼들 다 줘불고 숫놈 하나만 키울란다."
나는 물었다.
"애미는 어쩌고?"
할머니가 말했다.
"애미는 느이 이모부랑 잡아먹는다고 그랬응께, 숫놈 하나만 키워불게."
내가 말했다.
"잡아먹는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이~(응과 비슷한 표현). 저 애 한 번 배가 놔두면 또 금방 애 배브러. 또 그러면 나 못 산다이."

 

나는 쿠쿠(어미 강아지)를 쿠쿠가 새끼일 때부터 보기도 했고, 할머니 잘 지켜줘서 고맙다고 혼자서 토닥이기도 했다. 쿠쿠에게 정이 든 셈이다. 정이 들지 않은 동물은 먹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않고 동물은 먹는 일을 이상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만 일단은 쿠쿠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골을 머무르는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입양처를 알아봐야 했다. 

나의 반려견 푸순이를 입양한 동물 구호단체의 관계자 분께 연락을 드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 가지 걱정에 쉬이 연락을 하지 못했다. 쿠쿠는 중형견이었다. 서울에 있는 보통의 집에서 크고 자랄 사이즈의 강아지가 아니었다. 서울로 쿠쿠를 데려가 입양처를 알아보고 여차저차 새 주인을 찾아 입양을 보낸다 해도 넓은 마당이 있는 할머니 집보다 쿠쿠가 살기 좋은 환경일지 의문이었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떡하지. 여수에 입양처를 알아봐야 하나? 여수에는 인프라가 전혀 없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보냈다가 거기서 잡아먹히면 어떡하고?' 또 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복잡한 생각에 겁을 먹고는 우선 주말에 생각해보자고, 여수에서 입양처를 알아볼 수 없으면 동물구호단체 측에 연락을 드려보자고, 결정을 무책임하게 미룰 때쯤이었다. 덕양에 사는 이모가 새끼 한 마리를 데려가겠다며 할머니 집으로 왔다. 

나는 이모에게 "얘 잡아먹을 거 아니죠?" 하고 물었다.
이모는 "암만, 우리 불교 믿는다 아녀. 개 안 먹어."라고 말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모가 말을 이었다. 
"애미가 요 놈이 종이 좋고만, 예쁘고, 우리는 늘상 발바리만 키워 싸서 요래 큰 놈이 있으면 좋을 거인디."
이 때다 싶었다. 덕양 이모한테 쿠쿠를 보내야겠다, 싶어 이모한테 말했다.
"이모, 내가 얘 중성화시켜서 가져다 줄라니까 키울라요? 그럼 애 안배요. 얘 진짜 똑똑한 강아지예요."
이모는 "그라믄 키우지? 나는 좋지?"라고 말했다.
이모는 우선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갔고, 나는 혼자 좋아라 했다.

 

한 일주일 쿠쿠와 정서적 유대를 쌓고, 차에 타는 일이 무섭지 않도록 차 안에서 자주 간식도 주자.

다음 주쯤 광양이나 순천에 있는 동물병원을 알아보자.

중성화를 시키고 쿠쿠가 잘 회복하면 덕양 이모에게 데려다 주자.

 

덕양 이모 집 마당은 할머니 집 마당보다 넓었다. 적어도 그 큰 몸을 가지고 좁은 방에 갇혀 퇴근할 주인만을 노심초사 기다리며 남은 생을 보내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입양을 보내려면 어차피 중성화는 해야 했으니 일이 줄어도 한참은 준 셈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어미 덕양 이모 가져다주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머니 집 지킨다고 그리 짖어댄 게 몇 년인데 그라고 잡아먹으면 써? 내가 중성화 시켜올라니까 덕양 이모한테 보내는 걸로 그렇게 합시다잉? 새끼는 숫놈 하나 키우는 걸로 하고! 할무니 개 없으면 혼자서 외로와."

할머니는 답이 없었고, 나는 계속 좋아라 했다. 

 

저녁에 밥을 먹는데 할머니가 말했다. 

"개 애 안 배면 내가 키우면 될 것 같은디."

나는 "정말? 안 잡아 묵고?"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애 안 배면 계속 키우지 뭘라 잡아먹는 가디, 나도 쟤랑 몇 년을 같이 있었는디."라고 답했다.

 

아차, 싶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쿠쿠가 또 애를 밸까 봐, 애 일곱을 낳아버릴까 봐, 할머니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까 봐 그것이 염려스러운 거였다.

저 큰 개를 어디다 주려니까 사료값을 달라길래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모부가 때 되면 잡아다 몸 보양을 하겠다니 그렇게 하자고 결정하고는 한시름 걱정을 덜었던 게다.

 

나는 할머니의 걱정, 할머니가 가진 문제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걱정으로로 생긴 결과, 현상(강아지를 죽이더라도 걱정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을 막아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괜한 시간을 낭비했다. 

 

"중성화를 하면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 내가 중성화를 해서 데려다 놓을 테니 계속 키우자."

라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뒤에 할머니를 설득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다소 허무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생명 구조대원이 된 마냥 머릿속에서 거창한 프로젝트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게 동물 구호단체 인프라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지만 쿠쿠가 살아갈 환경을 간과할 수는 없으니 쿠쿠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쿠쿠 사진을 예쁘게 찍어봐야겠구나 등등.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기에 당위가 충분한 예쁘고 기특한 생각이었다.

다만 감내하기 어렵고 복잡해서 스스로 계획을 미룰 만큼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문제는 '강아지가 또 애를 가질까 봐 생긴 할머니의 걱정'이었고

해결책은 '쿠쿠를 중성화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이 해결책에 공감할 수 있도록 '여지껏 같이 살았는데 애를 안 가지면 저 똑똑한 강아지랑 계속 같이 살면 안 외롭고 좋자네. 내가 중성화해서 데려다 놓을게. 잡아먹지 말자. 응?" 하고 설득하면 되었다.

 

끝.

 

문제 해결은 복잡함에 있지 않다. 

해결할 수 있는 진짜 문제에 다가가서 그 문제를 명쾌하게 정의하고 간결하고 되도록이면 쉬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
문제 해결은 정말 그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되뇌어야지.

기획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고,
문제는 복잡함을 걷어낸 곳에 있어.
바보야 이리 돌아와. 헤매지 말고 원점으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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